월급 올라도 더 가난해졌다…호주 임금 3.2% 상승에도 물가 3.8% ‘추월’
호주 근로자들의 임금이 지난 1년간 3% 넘게 올랐지만, 물가 상승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면서 실질임금이 다시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생활비 부담이 계속되는 가운데 이번 임금 지표는 가계에는 악재지만, 호주중앙은행(RBA)의 추가 금리 인상 가능성을 낮추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호주통계청(ABS)이 발표한 최신 임금 자료에 따르면 호주 임금은 분기 기준 0.8%, 연간 기준 3.2% 상승했다. 그러나 같은 기간 연간 물가상승률이 3.8%를 기록하면서 임금 상승률을 웃돌았다.
결국 근로자들의 통장에 들어오는 급여 자체는 늘었지만, 물가를 고려한 실질적인 구매력은 오히려 감소한 셈이다. 식료품과 주거비, 에너지 등 생활비 부담이 이어지면서 임금 인상 효과를 체감하기 어려운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글로벌X(Global X)의 마크 조컴 수석 투자전략가는 이번 수치가 호주 근로자들에게 상당한 타격이라고 평가했다. 임금 상승세가 둔화된 것은 RBA 입장에서는 긍정적인 소식이지만, 물가가 급여보다 빠르게 오르면서 호주인들의 실질임금은 후퇴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반면 주택담보대출을 보유한 가계에는 다소 긍정적인 신호가 될 가능성이 있다. 임금 상승세가 둔화되면 인건비 상승으로 인한 추가적인 인플레이션 압력이 완화될 수 있어 RBA가 기준금리를 다시 올려야 할 필요성이 줄어들 수 있기 때문이다.
조컴 전략가는 RBA가 높은 노동비용과 낮은 생산성을 우려해 온 만큼 이번 임금 상승세 둔화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이번 결과로 9월 금리 인상 압력이 일부 완화됐지만 추가 긴축 가능성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라고 진단했다.
옥스퍼드 이코노믹스의 해리 머피 크루즈 경제연구·글로벌무역 책임자도 이번 임금 지표가 RBA에 반가운 소식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RBA가 연간 임금 상승률 둔화를 기대해왔기 때문이다.
다만 이러한 흐름이 오래 지속되지 않을 가능성도 제기됐다. 호주 공정근로위원회(Fair Work Commission)가 지난 5월 결정한 어워드 임금(Award Wage) 4.75% 인상이 7월부터 적용되면서 올해 남은 기간 임금 상승률이 다시 높아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어워드 임금’은 호주에서 업종과 직종별로 법적으로 정해지는 최소 수준의 임금과 근로조건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번 4.75% 인상은 해당 제도의 적용을 받는 상당수 근로자의 급여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공식 통계가 발표되기 전 시장에서도 분기 임금 상승률 0.8%, 연간 상승률 3.2%를 예상하고 있었다. 호주의 분기 임금 상승률은 2025년 3분기 이후 0.8%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짐 차머스 호주 연방 재무장관은 이번 임금 통계에 대해 노동당 정부 집권 기간 명목임금 상승률이 4년 연속 3%를 넘어섰다고 강조했다. 다만 물가를 반영한 실질임금이 지난 1년 동안 하락했다는 점은 인정했다.
차머스 장관은 실질임금 하락의 원인이 임금 자체가 지나치게 낮아서라기보다 여전히 높은 인플레이션에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임금 상승을 지원하는 것이 호주 국민의 생활비 부담을 완화하는 중요한 방법 가운데 하나라고 강조했다.
정부에 따르면 호주의 실질임금은 최근 11개 분기 가운데 8개 분기에서 상승했다. 그러나 최근 물가상승률이 다시 임금 상승률을 앞서면서 가계가 느끼는 생활비 압박은 여전히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차머스 장관은 호주 경제가 이미 인플레이션 문제를 겪고 있던 상황에서 중동 지역의 전쟁이 물가 문제를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고 밝혔다. 특히 그 영향이 연료 가격을 넘어 경제 전반으로 확대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호주 정부는 높은 임금과 추가 세금 감면 등 생활비 지원 정책을 통해 가계 부담을 줄이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현재 임금 상승률 3.2%보다 물가상승률 3.8%가 높은 상황이 이어지면서 호주 근로자들의 실질 구매력 회복에는 시간이 더 필요할 것으로 전망된다.
향후 시장의 관심은 RBA의 다음 금리 결정에 집중될 것으로 보인다. 임금 상승 둔화는 추가 금리 인상 가능성을 낮추는 요인이지만, 물가가 여전히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어 RBA가 긴축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