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영주권 심사 ‘국내 신청자 우선’으로 전환…건설·의료·노인돌봄 인력 빨라진다
호주 정부가 순이민자 수를 줄이기 위해 이미 호주에 거주하며 일하고 있는 임시비자 소지자의 영주권 신청을 우선 처리한다. 건설과 의료, 노인돌봄 분야 종사자도 신속 심사 대상에 포함돼 호주 내 숙련 노동자들의 영주권 전환 기회가 확대될 전망이다.
토니 버크 호주 내무부 장관은 지난달 말 숙련비자 심사 우선순위를 조정하는 장관 지침을 발표했다. 새 지침에서는 국방 및 법 집행 관련 직종이 가장 높은 우선순위를 부여받았으며, 호주·영국·미국의 안보 협력체인 오커스(AUKUS) 사업에 기여할 수 있는 신청자도 중점적으로 심사한다.
호주 정부는 지난 5월 연방예산을 통해 연간 영구이민 정원 18만5,000명 가운데 70%를 호주 국내 신청자에게 배정하겠다고 밝혔다. 해외에서 신규 영주권자를 받아들이는 대신 이미 호주 인구에 포함돼 있는 임시비자 소지자를 영주권자로 전환해 순이민 증가를 억제하겠다는 전략이다.
순이민자 수는 일정 기간 호주에 입국해 체류한 사람에서 출국자를 제외해 산출하는 인구 지표다. 코로나19 국경 봉쇄가 해제된 이후 급증했으며, 2022년 9월에는 55만6,000명으로 정점을 기록했다. 지난해에는 30만1,000명으로 감소했지만 정부 목표인 22만5,000명보다는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호주국립대학교 이민연구소의 앨런 갬런 소장은 이미 호주에 거주하며 경제활동을 하는 사람을 우선 처리하면 신규 입국자가 추가되면서 발생하는 비자 적체를 줄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 브리징 비자 소지자는 사상 최대인 43만2,300명에 달한다.
브리징 비자는 기존 비자가 만료된 뒤 새로운 비자 신청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합법적으로 호주에 체류할 수 있도록 발급되는 임시비자다. 갬런 소장은 이번 조치가 코로나19 이후 크게 불어난 임시이민자 인구와 장기간 누적된 비자 심사 문제를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전 호주 이민부 차관 아불 리즈비 박사는 이번 변화만으로 순이민자 수가 크게 감소하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그는 현재 호주에 임시비자로 체류하는 사람이 약 300만 명이라며, 정부가 유학생비자나 숙련비자로 입국한 뒤 영주권으로 전환하는 경로를 보다 체계적으로 관리하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국방과 오커스 관련 종사자에게 발급되는 비자 수는 단기적으로 많지 않아 전체 순이민 규모에 미치는 영향도 제한적일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건설과 의료, 노인돌봄 분야 종사자 역시 우선 심사 대상에 포함돼 해당 직종에서 일하는 국내 신청자의 처리 속도는 빨라질 가능성이 크다.
호주 내무부는 이번 이민 프로그램이 국가적으로 중요한 핵심 산업과 전략 직종을 지원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미 호주에서 거주하고 일하며 사회에 기여하는 이민자들이 적시에 영주권으로 전환하도록 지원한다는 설명이다.
새 지침은 지정 지방지역의 고용주 후원비자에 가장 높은 우선순위를 부여했던 기존 정책을 대체한다. 이전 지침에서는 의료와 교육 직종이 그다음 우선순위에 포함돼 있었다.
야당은 정부가 충분한 발표나 협의 없이 중대한 이민정책 변경을 추진했다며 투명성 문제를 제기했다. 야당 내무·이민 담당 대변인인 조노 듀니엄 상원의원은 심사 순서만 재조정하는 방식으로는 순이민 수치가 표면적으로 낮아 보일 수 있지만, 비자 적체와 반복적인 비자 전환, 행정 부실로 커진 국내 임시체류자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이민 전문가들도 정부가 정책의 목적과 기대 효과를 국민에게 명확히 설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충분한 설명이 없으면 이민정책을 둘러싼 정보 공백이 잘못된 주장과 오해로 채워져 정부가 이민을 통제하지 못하고 있다는 불신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