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워킹홀리데이 비자 ‘대규모 중단’…24개국 신규 신청 일시 정지
호주 연방정부가 24개국을 대상으로 워킹홀리데이 비자 신규 신청을 일시 중단하면서 농업과 관광업 등 워홀러 의존도가 높은 산업을 중심으로 우려가 커지고 있다. 특히 이번 조치는 일부 국가의 연간 쿼터 소진에 따른 통상적인 중단과 달리, 대상 국가 대부분에 동시에 적용됐다는 점에서 호주 정부가 해외 순이민 규모를 줄이기 위한 본격적인 비자 정책 조정에 나선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현재 호주 내무부(Department of Home Affairs)는 ‘Work and Holiday Visa(Subclass 462)’ 대상국 가운데 24개국의 신규 비자 신청 접수를 일시 중단한 상태다. 호주 워킹홀리데이 프로그램은 해외 청년들이 호주를 여행하면서 일정 기간 취업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제도로, 지역 농업과 관광·서비스업의 인력 부족을 보완하는 역할을 해왔다.
호주의 워킹홀리데이 제도는 크게 두 종류로 나뉜다. 1975년 시작된 ‘Subclass 417’은 영국, 캐나다, 프랑스, 일본 등 현재 19개 파트너 국가를 대상으로 하며 연간 인원 제한이 없다. 이후 도입된 ‘Subclass 462’는 총 29개국을 대상으로 운영되며 국가별 연간 비자 발급 인원에 제한이 적용되는 방식이다.
대상은 아르헨티나, 오스트리아, 브라질, 칠레, 체코, 에콰도르, 그리스, 헝가리, 인도네시아, 이스라엘, 룩셈부르크, 말레이시아, 몽골, 파푸아뉴기니, 페루, 폴란드, 포르투갈, 싱가포르, 슬로바키아, 슬로베니아, 스페인, 스위스, 태국, 우루과이 이다.
호주 내무부 자료에 따르면 2025년 6월까지 6개월 동안 Subclass 462 비자 발급자의 주요 국적은 인도네시아, 중국, 미국 순이었다. 2025년 6월 30일 기준 호주에 체류 중인 워킹홀리데이 비자 소지자는 총 20만6,187명에 달했다.
현재 신규 신청이 중단된 국가는 아르헨티나, 오스트리아, 브라질, 칠레, 체코, 에콰도르, 그리스, 헝가리, 인도네시아, 이스라엘, 룩셈부르크, 말레이시아, 몽골, 파푸아뉴기니, 페루, 폴란드, 포르투갈, 싱가포르, 슬로바키아, 슬로베니아, 스페인, 스위스, 태국, 우루과이 등 총 24개국이다. 연간 5,000명의 쿼터를 보유한 인도네시아를 비롯해 비교적 많은 인원이 배정된 국가들도 포함됐다.
반면 산마리노와 튀르키예는 각각 연간 100명 규모로 선착순 신청을 계속 받고 있다. 중국과 인도, 베트남은 추첨제(ballot system)를 통해 신청자를 선발하고 있어 이번 접수 중단 대상에서 제외됐다.
호주 내무부는 연간 쿼터가 거의 소진됐거나 프로그램 연도 전체에 신청 건수를 분산시키기 위해 일시적으로 접수를 중단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정부의 이민정책 방향에 맞춰 워킹홀리데이 프로그램을 지속 가능한 수준으로 운영하기 위해 신청을 중단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다만 이번 대규모 중단의 구체적인 배경은 명확하게 공개되지 않았다. 토니 버크(Tony Burke) 호주 내무부 장관은 시드니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워킹홀리데이 비자가 “이전보다 더 느리게 처리되고 있다”고 밝혔지만, 정책 변화의 구체적인 이유에 대해서는 추가 설명을 내놓지 않았다.
이민 전문 변호사 크리스 존스턴(Chris Johnston)은 이번 조치를 “극적인 변화”라고 평가했다. 과거에도 특정 국가의 쿼터가 소진되거나 일시적으로 신청이 중단된 사례는 있었지만, 이번처럼 462 비자 대상국 대부분이 한꺼번에 중단된 것은 이전과 다른 상황이라는 설명이다.
특히 정부가 별도의 공식 발표 없이 내무부 웹사이트를 통해 관련 내용을 공개한 점도 논란이 되고 있다. 존스턴 변호사는 사실상 해당 정책이 “조용히 공개됐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조치가 호주의 ‘순해외이민(Net Overseas Migration·NOM)’ 감축 정책과 연관돼 있을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순해외이민은 일정 기간 호주로 들어온 장기 체류 인구에서 해외로 떠난 인구를 뺀 수치로, 호주 노동당 정부는 연간 순이민 규모를 22만5,000명 수준으로 낮추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호주 이민부 차관을 지낸 이민정책 전문가 아불 리즈비(Abul Rizvi)는 만약 정부가 순이민을 줄이기 위해 비자 심사를 의도적으로 늦추고 있다면 이는 효과적인 방법이 아니라고 지적했다. 그는 비자 처리 지연이 오히려 신청 적체를 늘리고 장기적으로 더 많은 문제를 발생시킬 수 있다고 평가했다.
리즈비는 순이민 규모를 조정하려면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도입된 워킹홀리데이 비자의 ‘최대 3년 체류’ 제도 가운데 마지막 3년 차 연장 자격을 폐지하는 방식이 더 합리적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미 비자를 신청한 사람들의 불확실성도 커지고 있다. 백패커·청년관광패널(Backpacker and Youth Tourism Advisory Panel·BYTAP)의 웬디 에일워드(Wendi Aylward)는 업계가 정부로부터 이번 조치에 대해 “거의 아무런 정보도 받지 못했다”고 밝혔다.
특히 7월 1일 이후 417 또는 462 비자를 신청한 사람 가운데 상당수가 8월 중순까지 결과를 받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신규 신청을 아직 제출하지 못한 사람들의 경우 접수가 재개될 때까지 여행과 취업 계획을 변경하거나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다.
문제는 워킹홀리데이 비자 축소가 호주 지방경제에 예상보다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이다. 워홀러들은 특히 과일·채소 재배 등 원예산업을 비롯한 지역 농업에서 단기 노동력을 공급하는 핵심 인력으로 평가된다.
에일워드는 지방 농가의 경우 단 며칠이나 일주일 정도만 인력이 필요한 경우가 많아 이동성이 높은 워킹홀리데이 근로자들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다. 이들이 지역에서 벌어들인 소득을 다시 숙박, 음식, 여행 등에 소비한다는 점에서도 지역경제에 미치는 효과가 크다는 분석이다.
실제 호주관광청(Tourism Australia)에 따르면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 워킹홀리데이 방문객들은 호주 경제에 약 32억 호주달러를 기여했다. 이 가운데 최소 7억2,600만 호주달러가 지방 지역에서 소비된 것으로 집계됐다.
관광업계 역시 이번 비자 중단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워홀러들은 단순히 호주에서 일하는 외국인 근로자에 그치지 않고 여행상품을 이용하고, 지역 빵집과 식당에서 소비하며, 호스텔에 머무는 등 지방 관광경제의 주요 소비자 역할까지 담당하기 때문이다.
버크 장관은 농업 분야의 주요 외국인 노동력 공급 프로그램으로 ‘PALM(Pacific Australia Labour Mobility)’ 제도를 지목했다. PALM은 태평양 도서국과 동티모르 등의 근로자가 호주에서 일정 기간 일할 수 있도록 하는 노동이동 프로그램이다.
그러나 리즈비는 최근 NSW 의회 조사에서 PALM 근로자들의 열악한 주거환경과 장시간 노동, 착취 및 학대 사례가 지적된 상황에서 정부가 해당 제도를 농업 인력의 주요 대안으로 강조하는 것은 의외라고 비판했다.
호주 내무부는 “워킹홀리데이 프로그램 개혁을 통해 수요를 보다 효과적으로 관리하고 비자를 더욱 공정하게 배분할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24개국에 대한 신청 접수가 언제 다시 시작될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일정을 제시하지 않았다.
이에 따라 호주 워킹홀리데이를 준비하는 신청자들의 불확실성은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특히 이번 조치가 단순한 일시적 접수 조정에 그칠지, 호주 정부의 순이민 감축을 위한 워킹홀리데이 제도 개편으로 이어질지가 향후 핵심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